2011년 03월 27일
그는 항상 내게 구겨진 종이를 던지곤 했다.
그는 항상 내게 구겨진 종이를 던지곤 했다.
「뭐하는 거야? 아직도 거기 있었어?」
나는 언제나 시선을 바닥에 고정시키곤 가만히 서 있었을 뿐 이었다.
그는 다시 몸을 돌려 펜으로 몇 글자씩 적어 내려갔다. 하지만 그 손길이 멈추기 까지는 금방이다. 구겨진 종이가 다시 날아온다. 이마에 맞고 떨어진 종이가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지만 나는 그 종이를 줍지 않는다.
언젠가 한번은 그 종이를 주워서 다시 돌려주려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이 있은 후, 두 번 다시 그가 내게 던진 구겨진 종이를 펼치지 않았다.
「시키지도 않은 짓은 하지 말라고! 넌 그냥 거기서 내가 던진는 종이만 맞으면 돼! 왜, 기분 나빠? 억울해? 도와주려고 했는데 되려 화를 내니까 짜증나? 허튼 생각 하지 말라고. 누가 도와 달랬어? 누가 너따위에게 내가 쓴 글을 되돌려 달라고 말했어? 괜한 짓 하지 마! 동정 하지 말라고!!」
그는 목에 핏줄을 세우고 마치 나를 죽일 것 같은 충혈된 붉은 눈으로 쏘아 보았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속이고 그의 비명을 들을 수밖에, 그의 사나운 표정을 온 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 알았어요. 이번 달은 어떻게든 맞춰 볼테니까 잡지사에도 잘 말해 주세요. 저도 이러고 싶은거 아니라고요! 자꾸 왜그래요? 누가 안 쓴다고 했어요?」
「... 알았어요. 27일까지. 예. 미안해요 소리쳐서. 네. 끊을게요.」
그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거칠게 머리를 긁적였다. 삼일 동안 감지 않은 머리에서 기름냄새가 진동했다. 하지만 나는 상관 없었다. 나는 그저 그가 손가락으로 만들어낸 배설물을 받아 내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구겨진 종이를 펼칠 일도 없다. 가끔. 아주 가끔은 피우고 있던 담배를 다짜고짜 내 손바닥에 비벼 껐다.
나는 비명을 내지르지도 못한 채 이를 악 물었다. 찌를 것 같은 고통과 모든 신경을 자극하는 고통이 온 몸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명 한 줄기 내뱉지 못했다. 식은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어도,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있어서 그런 존재였다.
며칠이 지나고 편집장과 약속했던 27일이 다가올 수록 그는 점점 더 난폭하고 포악해졌다.
마시던 물컵을 그대로 내게 던졌다. 쇄골뼈에 맞고 튕겨오른 물컵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유리조각을 주워 담더니 조소 담긴 표정으로 조각을 내 머리 위에 쏟아 내었다.
날카로운 조각이 얼굴과 피부를 스치고 흘러 내렸다.
따끔거리는 느낌에 볼을 스다듬자 검붉게 물들은 피가 손가락에 묻어 나왔다.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었다. 미친 듯이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가 허락치 않았다. 그의 신경을 건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만 그럴 거야. 마감이 다가오니까 괜시리 더 날카로워 진거야. 마감만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 올 거야.
예전 처럼 따스하게 미소 지으며 나를 바라봐 줄거야.
구겨진 종이도 결코 거칠게 던지지 않을 거야. 종이를 펼쳐서 썼던 글을 다시 곱씹어보고 수정해나갈 거야. 그렇게 믿겠어. 지금은 단지, 고통의 순간일 뿐 이야.
그렇게 그를 믿고, 나를 믿었다.
「이틀 만 더 시간을 주세요. 10장 정도만 남았어요. 뭐라고요? 그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잖아요? 인쇄소 시간을 누가 모를 줄 알아요? 예? 인쇄소 스케쥴이라고요? 하! 그래요 그렇게 나오신다 이거죠? 잘 아시잖아요, 편집장님. 예. 저 잘나가던 시절 잊지 않았고요. 그때 저한테 사정사정해서 그 잡지에 글 싣게 해준 것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근데 지금 편집장님이 저한테 이러시면 안 되는거 아시잖아요. 예. 예. 그래요 딱 이틀이예요. 닥달하지 않아도 그때 다 끝납니다. 퇴고도 마무리 짓습니다. 편집장님 손에 돈다발 안겨 드릴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요. 예. 흥분해서 미안합니다. 잊어 주세요. 예. 오후 2시까지 강기자 보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먼저 끊습니다.」
전화를 끊자 마자 그는 내게 다가오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걷어 찼다.
그의 발이 턱에 닿자 마자 입술이 세게 찢기는 고통이 찾아왔다. 둔탁한 소음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입술 끝에서 짭짤한 맛이 느껴졌다. 턱 끝이 얼얼했다. 방이 한 바퀴 회전한 것 같았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신경도 쓰지 않고 다시 의자에 앉아 글을 써내려갔다.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뭣하러 그 집에 계속 있냐고. 넌 단순히 그의 스트레스 해소용일 뿐 이라고.
그런 말에 내 대답은 항시 같았다.
『괜찮아요. 알잖아요 마감이 다가오면 다들 신경이 곤두서니까요. 괜찮아요. 그를 이해해요.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지 마요.』
그를 변호하면서도 마음 속에서는 항상 의문점이 샘솟았다.
왜 그를 변호하고 있는 거지? 사실은 그게 아닌데. 솔직하게 말하면 편해질 텐데.
아냐, 다른 사람들은 나를 구해줄 수 없어. 단순히 힘들었던 감정을 토로해내고 잠시 동안 위안을 받는 것 뿐 이야. 값싼 동정일 뿐 이니까 넘어가선 안 돼.
나를 몰아 붙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니까. 짧은 위안, 동정.
모두들 그렇게 말만 하고 실질적으로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은, 아무도 실행하지 않았다.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위로의 말을 건네준다. 더 이상의 진도는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 조곤조곤 말을 꺼냈다.
「너무 못되게 구는거 아냐? 저거 봐 안쓰러워 보이잖아.」
「신경 꺼 원래 『저런 거』니까. 네가 걱정할 필요 없다고.」
「뭐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집주인도 아니고 내 『소유』도 아닌데 뭐라고 할 수는 없지.」
끝. 항상 이렇게 끝맺음 짓게 되는 싸구려 동정.
희망은 갖지 않는다. 단순히 조금씩 커져가는 희망의 끝에는 언제나 곱절로 불려진 절망만이 나를 반길 뿐 이다.
「됐어! 끝났다!! 우하하하!!!!」
이틀 뒤, 그는 편집장과 약속한 시간에 정확하게 원고를 끝냈다.
사실 정확하다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다. 본래 약속한 기한 보다 일주일 하고도 이틀이 더 지났으니까. 그래도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원고를 끝낸 모습에 괜시리 나 또한 가슴이 뭉큼해졌다.
한동안 그는 내게 구겨진 종이를 던지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고 해도 그가 얌전해지는 건 아니다. 그는 언제나 처럼 구겨진 종이와,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 피다 만 담배를 내게 던질 것 이다.
「오. 다 끝내신 거예요? 다행이네요. 이번에도 늦으면 편집장님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셨거든요.」
「빌어먹을 편집장. 그깟 이틀 늦었다고 엄포 놓기는... 강기자도 고생이 많네요.」
「제가 뭘요. 어차피 제 일인걸요. 하하. 그것보다 작가님의 글을 조금이라도 빨리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제 큰 기쁨이죠.」
강기자는 실실 웃으며 그의 기분을 맞춰주었다. 그는 피식 웃더니 지금 막 끝낸 원고를 강기자에게 건네었다. 그리고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나는 조용히 그를 올려다 보았다. 한결 온화한 표정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 순간 마음 속의 파도가 일렁였다.
「고생했다. 내 비위 맞춰 주느라 힘들었지?」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나는 그저, 그저.....
「작가님, 그 쓰레기통 많이 닳았는데 슬슬 바꿀 때 되지 않았어요? 여기저기 이도 빠졌네. 이참에 제가 하나 사드릴까요?」
그의 구겨진 종이를 묵묵하게 받아내는 쓰레기통일 뿐 이니까.
# by | 2011/03/27 14:49 | 트랙백 | 덧글(3)






